그 날 하만이 마음이 기뻐 즐거이 나오더니 모르드개가 대궐 문에 있어 일어나지도 아니하고 몸을 움직이지도 아니하는 것을 보고 매우 노하나 참고 집에 돌아와서 사람을 보내어 그의 친구들과 그의 아내 세레스를 청하여 자기의 큰 영광과 자녀가 많은 것과 왕이 자기를 들어 왕의 모든 지방관이나 신하들보다 높인 것을 다 말하고 또 하만이 이르되 왕후 에스더가 그 베푼 잔치에 왕과 함께 오기를 허락 받은 자는 나밖에 없었고 내일도 왕과 함께 청함을 받았느니라(에 5:9~12)
하만이 기뻐 즐거워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 나라의 왕뿐만 아니라 왕후도 자신을 좋아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왕이 자기의 지위를 높이는 것도 기쁜데 그 왕의 아내까지 왕을 위한 잔치에 자신을 초대하다니. 그래서 자신은 이 나라에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인물이라 생각한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하만의 착각일 뿐입니다. 왕이 그를 중요히 생각해 높인 것은 맞다 할 수 있겠지만, 왕후 에스더는 그를 결코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어찌 자기 민족을 말살시켜버리겠다는 사람을 귀히 여기고 중요한 사람으로 섬길 수 있단 말입니까?
단지 왕후인 에스더가 하만을 잔치에 초대한 것은 준비된 계획이 있어서입니다. 하만을 잡고 자기민족을 위기에서 구해내기 위해 그녀는 죽음을 각오하고 삼일 동안 금식하고 기도하며 치밀한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그 계획된 잔치에 하만을 초대한 것입니다.
그런데 하만은 아무것도 모르고 승리의 기쁨에 차있습니다. 사람들을 불러모아 자랑하기에 바쁩니다. 자기의 영광이 얼마나 큰지. 자기의 자녀가 얼마나 많은지. 왕이 자기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심지어 왕후도 자기를 얼마나 신뢰하는지를.
하만을 불쾌하게 만드는 것은 단 하나뿐입니다. 성문에서 자신이 지나가는 것을 거들떠보지도 않는 사람, 모르드개. 모르드개는 하만의 분노의 바로 그 한 점입니다. 없애고 싶은 존재, 모르드개. 그 한 사람만 없어진다면 이 행복은 영원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하만이 모르는 것이 있습니다. 그를 기다리는 내일은 장미의 꽃 같은 화려하고 향긋한 내일이 아니라 장미의 가시 같은 삭막하고 피비린내 나는 내일이라는 것을. 그가 지금 즐거워하며 기뻐하는 것은 그날 밤 생을 마감할지도 모를 운명 앞에서 마냥 즐거워하는 어리석은 부자와 같은 헛된 즐거움이라는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