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인들이 안디옥과 이고니온에서 와서 무리를 충동하니 그들이 돌로 바울을 쳐서 죽은 줄로 알고 시외로 끌어 내치니라 제자들이 둘러섰을 때에 바울이 일어나 그 성에 들어갔다가 이튿날 바나바와 함께 더베로 가서 복음을 그 성에서 전하여 많은 사람을 제자로 삼고 루스드라와 이고니온과 안디옥으로 돌아가서 제자들의 마음을 굳게 하여 이 믿음에 머물러 있으라 권하고 또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 하고(행 14:19-22)
바울과 바나바가 루스드라에 있을 때 안디옥과 이고니온에서 온 유대인들이 사람들을 충동해 바울을 돌로 쳐 죽이도록 했습니다. 얼마나 많은 돌을 맞았는지 모르겠지만 이로 인하여 바울이 쓰러졌고 제자들이 둘러선 것으로 보아 사람들은 바울이 죽었다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 바울이 일어났습니다. 그래도 그 돌질로 죽지는 않았던 것입니다. 아마도 여기의 바울은 기적적인 치유를 통해 일어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이지는 않습니다. 돌에 맞아 기절은 했지만 죽는 않았기에 일어난 것이고, 또 어느 정도 움직일 수 있는 몸이었기에 그 다음 사역을 위해 나아간 것으로 보입니다.
만일 바울의 몸 상태가 성한 몸이 아니었다면 어느 정도 회복 기간을 두고 다음 사역을 위해 나아갈 필요가 있었을 것입니다. 기절해 쓰러져 사람들이 죽었다 생각할 정도로 돌에 맞았다면 바로 그 다음날 일어나 복음을 전하러 더베로 가는 일은 무리라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그리했습니다.
바울의 이 모습을 보며 도대체 무엇이 바울을 그러한 사람으로 만들 수 있었을까, 하는 질문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얻게 되는 답은 이것은 사람이 만들어낼 수 있는 힘이나 열정이 아니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일개의 사람이 그렇게 말하고 행동할 수밖에 없도록 그 인생을 뒤집은 하나님의 열심이 아니라면 어찌 인생이 그러할 수 있겠는가, 하는 생각으로 인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