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리오가 아가야 총독 되었을 때에 유대인이 일제히 일어나 바울을 대적하여 법정으로 데리고 가서 말하되 이 사람이 율법을 어기면서 하나님을 경외하라고 사람들을 권한다 하거늘 바울이 입을 열고자 할 때에 갈리오가 유대인들에게 이르되 너희 유대인들아 만일 이것이 무슨 부정한 일이나 불량한 행동이었으면 내가 너희 말을 들어 주는 것이 옳거니와 만일 문제가 언어와 명칭과 너희 법에 관한 것이면 너희가 스스로 처리하라 나는 이러한 일에 재판장 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고(행 18:12-15)
우리의 생각엔 하나님의 일을 하니 좀더 즐겁고 평안하게 일을 했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이 있습니다. 그렇게 큰 수고와 위험을 감수하지 않아도 많은 열매를 맺는 기쁨을 맞보았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이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지키시고 보호하겠다, 어떤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다, 라고 약속하셨음에도 그의 사람들에게 상당한 인내와 용기를 필요로 하는 상황을 주실 때가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아브라함이 복의 통로가 되기까지 겪어야만 했던 예기치 못한 삶의 문제들처럼. 야곱이 축복의 사람이 되기까지 지나야만 했던 모질고 험악한 세월처럼. 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되기까지 경험해야 했던 수많은 삶의 역경들처럼.
왜 하나님이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그러한 삶과 형편을 허락하시는지는 몰라도 분명한 것은 하나님은 사랑해도 자녀들의 삶을 쉽고 만만하게 인도하지 않으시더라는 사실입니다. 폭풍을 잠재우게 하는 것이 아니라 폭풍을 통과하게 하시더라는 사실입니다. 안전한 항해가 아니라 무사히 도착하는 항해의 길로 인도하시더라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바울의 삶이 그랬나 봅니다. 하나님의 인도와 보호의 약속 있어도 온 유대인이 들고 일어나 대적을 하는 상황에 직면해야 했으며, 그럼에도 그 위기의 순간 이방인 지도자의 손을 빌어 보호하시고 지키시는 기가 막힌 일이 있었나 봅니다. 일이 없는 것이 아니라 있어도 신비롭게 지나갈 수 있도록 인도하셨나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