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일 후에 방백들이 내게 나아와 이르되 이스라엘 백성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이 땅 백성들에게서 떠나지 아니하고 가나안 사람들과 헷 사람들과 브리스 사람들과 여부스 사람들과 암몬 사람들과 모압 사람들과 애굽 사람들과 아모리 사람들의 가증한 일을 행하여 그들의 딸을 맞이하여 아내와 며느리로 삼아 거룩한 자손이 그 지방 사람들과 서로 섞이게 하는데 방백들과 고관들이 이 죄에 더욱 으뜸이 되었다 하는지라(스 9:1-2)
출에굽 당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다른 민족의 백성들과 언약을 금했고 결혼도 금했습니다. 하나님이 그렇게까지 배타적인 정책을 명하신 이유는 이스라엘 민족의 순결을 유지하며 영적 정체성을 보존하기 위함이었습니다(출 34:10-17, 신 7:1-5).
사실 이스라엘이 지난 70년간 바벨론 포로생활을 하게 되었던 것도 하나님이 금한 민족과의 통혼과 언약으로 인한 종교혼합주의가 만들어낸 우상숭배와 심각한 도덕적 부패 때문이었다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이스라엘에게 그 같은 죄가 있다는 사실이 놀라울 뿐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포로에서 돌아와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그 시점에서도 여전히 과거의 그 죄가 사라지지 않고 있습니다. 그것도 백성의 관리와 지도자라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더욱 그러한 것을 봅니다.
그러면서 깨닫게 되는 것 하나가 있습니다. 인간은 그렇게 쉽게 변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70년의 혹독한 역사의 매를 맞았어도 그것이 그렇게 좋은 약이 되지 못하는 모습을 보면서 인간의 죄의 크기와 무게를 다시 한 번 실감하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이 같은 인생들을 용서하기 위해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주신 것입니다. 아들이 아니고는 결코 해결할 수 없을 만큼 인간들의 죄가 그렇게도 크고 중했기에 하나님은 그러한 죄인들을 용서하기 위해 아들을 희생하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