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오늘 복과 저주를 너희 앞에 두나니 너희가 만일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들으면 축복이 될 것이요 너희가 만일 내가 오늘 너희에 명령하는 도에서 돌이켜 떠나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듣지 아니하고 본래 알지 못하던 다른 신들을 따르면 저주를 받으리라(신 11:26-28)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은 복입니다. 그분은 우리가 저주 받아 망하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그 자녀들의 피눈물을 기뻐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그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과 저주의 길을 주셨다는 것이 특별합니다. 사랑과 은혜의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의 길만 주신 것이 아니라 복과 저주의 길을 다 주셨다니. 어떤 면에서는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한편 우리의 죄 된 본성을 생각하면 하나님은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십분 이해하게 됩니다. 만일 우리 앞에 복의 길만 놓여 있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자원하여 따라가지 않았을 확률이 높습니다. 어차피 복을 누릴 건데 내 맘대로 살아 이 땅도 누려보고 그 복도 함께 누리는 것이 좋지 않겠어? 라고 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내 맘대로 살아보는 것은 그리 복된 삶이 아닙니다. 그것은 오히려 즐거운 것, 누리는 것이 아니라 망하는 것, 파괴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복 주시기 위해 저주가 무서워서라도 복의 길을 선택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저주를 하고 싶어 저주의 길을 주신 것이 아니라 복으로 이끌고 싶어하는 하나님의 간절한 마음으로 그 두 길을 우리 앞에 두신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대뜸 왜 우리에게 그렇게 복과 저주를 선택하는 자유의지를 주셨을까? 라고 생각합니다. 선택권 없이 하나님 명령에 순종하는 그런 사람으로 만들었으면 우리도 그 명령을 따르지 못한 죄책감으로 괴로워할 일이 없을 텐데, 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의 하나님은 우리에게 선택권 주시기를 기뻐하시는 분으로 등장합니다. 우리를 사물이나 동물이나 로봇이 아니라 하나님과 관계하며 그 말씀을 선택해 따를 수 있는 성숙한 인격체로 불러주시는 분으로 등장합니다.
때문에 우리는 선택권이라는 것이 우리를 그만큼 인격적으로 대우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이것입니다. 신명기의 복과 저주는 하나님의 은총이요 은혜라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