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한 새는 모두 너희가 먹으려니와 이런 것은 먹지 못할지니 곧 독수리와 솔개와 물수리와..(신 14:11~ )
지나치게 음식을 가려먹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사람들에게 금방 특이한 사람으로 인식될 것입니다. 혹 지나치게 음식을 가려먹는 집단이나 국가가 있다면 그 집단이나 국가는 더욱 쉽게 특별한 존재로 드러날 것입니다. 오늘날이었다면 왕따 되기 쉬운 상황이었을는지도 모릅니다.
어찌 생각해보면 하나님은 마치 이스라엘이 세상에서 왕따 되기를 원하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게 해서라도 세상과 구별되는 특별한 존재라는 것을 인식시키기 원하신 것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하루 세 번 식사 때마다 음식을 가려야 하는 문제에 걸리게 된다면 자신의 신분과 위치를 매번 확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택하심을 입은 거룩한 성민이다. 이 음식이 그것을 분명하게 말해 준다, 하는.
사실 모든 음식을 가려먹는 것은 매우 번거롭고 귀찮은 일입니다. 하지만 이 일은 번거롭고 귀찮은 만큼 더욱 큰 특권이 된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그 만큼 특별한 존재라는 메시지가 모든 음식에 담겨있기 때문입니다.
현대를 살아가는 성도에게 이러한 음식에 대한 정결법은 더 이상 유효한 법은 아닙니다. 주님의 십자가가 그 모든 부정함의 벽을 무너뜨렸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정결법 속에 존재하는 일반 원리는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택정함을 입은 우리 또한 하나님 앞에서 특별한 존재라는 사실입니다. 거룩한 존재라는 사실입니다. 때문에 우리의 삶 또한 그 특별함에 걸 맞는 구별된 삶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