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27:21~24

by 박순정 posted Apr 17,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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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독이 대답하여 이르되 둘 중의 누구를 너희에게 놓아 주기를 원하느냐 이르되 바라바로소이다 빌라도가 이르되 그러면 그리스도라 하는 예수를 내가 어떻게 하랴 그들이 다 이르되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하겠나이다 빌라도가 이르되 어찜이냐 무슨 악한 일을 하였느냐 그들이 더욱 소리질러 이르되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하겠나이다 하는지라 빌라도가 아무 성과도 없이 도리어 민란이 나려는 것을 보고 물을 가져다가 무리 앞에서 손을 씻으며 이르되 이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나는 무죄하니 너희가 당하라(마 27:21-24)


인간은 근본적으로 진리에 대해 무지하고 무능합니다. 제대로 알 수도 없고, 알아도 그 일을 제대로 해낼 수도 없습니다. 빌라도가 그 대표적인 예가 아닐까 합니다. 그가 안 예수님은 유대인들이 고발한 대로 이해하는 일이었습니다.


유대인의 왕. 이는 로마인들에게는 신성모독의 죄라기 보다는 정치적 반역의 의미가 더 강한 죄목입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을 그 정도로만 알았습니다. 그럼에도 그에게는 예수님이 무죄라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되도록이면 그 사람을 놓아주려 했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그의 뜻대로 할 수 없었습니다. 결국 그는 십자가 처형을 집행할 수 있을 정도의 강력한 권한을 가졌음에도 사람 하나 풀어줄 수 없어 손을 씻으며 그 책임을 고발자들에게 전가하는 나약함을 보이게 됩니다. 나는 이 결정에 아무런 상관이 없다. 다 너희가 결정한 것이니 너희가 그 책임을 지라며.


우리는 빌라도를 보며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안다고 해도 그 일을 해내지 못하는 인생의 한계를 봅니다. 이 모습을 우리는 베드로에게서도 보았고, 예수님을 판 가룟 유다에게서도 보았습니다. 죄로 인해 진리를 알 수 없고, 어찌 안다고 해도 그 앎을 삶으로 만들어 낼 수 없는 가난한 인생임을.


이것 때문에 십자가가 우리에게 온 것입니다. 생의 문제에 대한 해방이 있어야 인생의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고, 죄의 문제에 대한 해방이 있어야 그 문제가 해결 될 수 있음을 아시기에 주님이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부당한 대우와 십자가의 처형을 묵묵히 담당하신 것입니다.